2026년, 우리의 목소리를 되찾으며
2026년, 우리의 목소리를 되찾으며
뤼키 좐슨-윌슨
2025년 10월 31일
저는 2026년 국가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을 계속해서 구하고 있습니다. 기도로 어떻게 더 잘 준비할 수 있을까요? 신자들을 위해 또한 신자들로부터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 등등.
내가 주님께 이런 질문들을 드리는 이유는, 중보기도자, 교회, 그리고 나라를 위한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읽다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모세는 처음엔 저항하고 두려워했지만 결국 가서 백성을 속박에서 이끌어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백성을 위한 중보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으며, 그가 말할 때 재앙이 내렸고, 모세가 기도할 때만 멈췄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동역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세가 가지 않았다면 백성은 여전히 종살이를 했을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재앙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며, 멈추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물을 피로 바꾸거나 하늘에서 테니스 공만한 우박을 내리게 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세가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며 이 말들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의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재앙과 여정 중 지연에 대한 반응과 불평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들의 구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큰 기대를 품고 기다렸습니다. 재앙들은 단순히 애굽에 대한 심판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대한 “I AM”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우리는 그 말씀이 열매 맺도록 기도 안에서 그분과 동역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속박에서 구원받을 때가 되었을 때, 다니엘은 기도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그 민족과 그들 앞에 놓인 시간표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땅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분의 백성과 동역하시며, 그분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그 자리에 세우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래 위에 선이 그어졌다”고 하신 “2026, 열린 책의 해”를 향한 이 준비의 계절에, 우리는 의도를 가지고 살며, 의도를 가지고 기도하며,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공부하던 중, 주님께서 2026년에 의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위한 일련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지난주 초점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확장하여 주님께서 깨우실 사람들, 즉 활동가들과 심지어 안티파 구성원들까지 사랑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청년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활성화 코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2026년에 우리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을 위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틀 전 산책하던 중 동네와 학교, 청년들, 우리 주를 위해 기도했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되찾아라.” 저는 즉시 주님을 위해, 그분의 뜻과 목적을 위해, 천국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의 목소리를 되찾을 때가 왔다.” 이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무거운 짐을 느꼈습니다. 불안과 위협, 심지어 극심한 두려움까지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목소리를 되찾을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이성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속임수와 반대 앞에서 담대히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서서히 달아오르는 듯했습니다. 바쁜 삶, 여성 권리 운동(낙태 찬성 운동의 다른 표현), BLM, LGTBQI+ 등 시민권 운동을 표방한 다양한 운동들, 정치적 올바름 용어의 도입, 그리고 그 용어가 자주 바뀌는 것, 심지어 흑인들을 지칭하는 방식조차 자주 바뀌는 것까지. 저는 인종과 노예제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 전에 케런 (35년 지기 절친이자 본부 사무실에서 나를 돕는 흑인)에게 어떤 용어를 써야 할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용어에 걸려 넘어져 상처받고 중보기도에 참여하기 어려워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명사 운동에서 이를 목격합니다. 대명사 사용의 오해로 인한 상처 때문에 대화 전체가 무산되기도 하죠. 이는 우리에게 매우 해로운 영향을 미칩니다. 용어 문제로 대화가 완전히 멈춰버립니다.
여기에 취소 문화까지 더해져 우리는 타인에게 일어난 일을 지켜보며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까 두려워했습니다. 코로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직장을 잃었고, 전 세계를 연결해 줄 것으로 기대되던 소셜 미디어는 오히려 가족을 갈라놓거나 직장을 잃게 만드는 쓰리고 분열적인 대화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목소리를 되찾기를 원하십니다. 진리를 말하고, 담대히 말하며, 우리 학교와 도시, 교회, 주(state), 국가 위에 하늘나라의 원리를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기도와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의 권세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담대히 말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여러 구절을 통해 바울의 삶을 통해 담대히 말하는 방법을 이해해 봅시다. 그 과정에서 바울에게 이 담대함을 불러일으킨 요소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기억하십시오, 바울의 삶은 결코 쉬워지지 않았습니다. 곧 자세히 나누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상황은 기하급수적으로 더 어려워졌습니다.
첫째,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바울에게서, 우리가 목소리를 되찾고 그리스도의 몸인 의의 막대기들이 이 ‘열린 책의 해’에 그들의 목소리를 되찾도록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같은 담대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1) 담대함을 얻기 위해서는 종종 극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바울의 다마스커스 길 체험 직후 기록된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9:20-31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핵심 단어는 29절에 있습니다: 바울이 “담대히 말하다”
그리스어 단어는 parrésiazomai입니다. 이 동사는 “말에 솔직하거나, 정신과 태도에 자신감을 가지다 – 담대해지다, 담대히 (설교하거나 말하다). 자신감을 키우다, 담대함을 가지다, 확신을 보이다, 담대한 태도를 취하다”를 의미합니다.
사전적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담대히 말하다”로 번역된 이 동사는 복음을 두려움 없이, 거리낌 없이 선포하는 특성을 나타냅니다. 이는 단순한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위협이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자유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담대한 말은 항상 말씀의 전파, 그리스도의 종들의 정당성 입증, 교회의 세움과 연결됩니다.
오, 우리가 스펄전이나 에드워즈 시대처럼 진리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이해로 씻겨져서 마음을 찌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요!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은 곧바로 말씀, 복음, 그리스도의 진리와 십자가에서의 그분의 사역을 선포했습니다. 그 자신은 성도들을 끈질기게 박해하고 투옥했던 자였으나, 이제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계시가 임했습니다. 그가 가졌던 머리 지식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가말리엘은 유명한 율법 교사 힐렐의 손자이자 제자로, 율법을 적용할 때 자비를 중시했던 인물입니다. 가말리엘이 바울을 ‘독서광’이라 칭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수년간 구약의 계명을 흡수해 온 이 바울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열렸고, 그 머리로 쌓아온 지식이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곧바로 마음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바울은 진리로 무장한 채 즉시 회당에 들어가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 이는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격 탓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이는 위협이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자유입니다. 말씀을 알고,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았는지 알 때, 내면에서 솟아나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받은 계시의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고 말하기 위한 담대함입니다. 우리의 눈이 진리를 보게 되면, 스위치가 켜지고 마음속에 불이 붙어 전례 없는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같은 원리가 진리의 계시를 경험한 이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들이 속해 있던 기만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강력하고 역동적인 설교자들이 탄생했습니다. 민주당을 떠나 진리를 받아들인 ‘워크어웨이 운동’이 바로 그 예입니다.
텍사스 플랜드 패어랜트후드 전 대표 애비 존슨은 자궁 속 생명의 진리를 깨달았을 때 이를 경험했습니다. 오늘날 그녀는 가장 위대한 생명 옹호 운동가 중 한 명입니다. 극적인 변화는 담대함을 가져옵니다!
2) 극적인 전환은 담대함을 가져온다
사도행전 13:46-49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전도합니다 (여기 안디옥은 선교 본부가 있던 시리아 안디옥이 아닌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유대인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히 대응합니다.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ㅂ)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너희에게 전해야 했으나, 너희가 스스로 영생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기니 이제 우리는 돌아서서 이방인들에게로 가리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이방인에 대한 복음 전파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기뻐했고 유대인의 마음은 굳어졌으나, 이는 한때뿐임을 기억하세요.
이는 바울의 선교 사역에서 이방인에 대한 부르심이 중심이 되는 극적인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전환은 담대함을 가져옵니다.
3) 극적인 반대는 담대함과 진전을 가져온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리처럼 들립니다.
사도행전 14:1-3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 있을 때, 그들은 상당한 적대감에 직면했지만, 주님을 위해 담대히 말하며 오랜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심으로 은혜의 메시지를 확증하셨습니다. 이전에는 바울의 선교 사역에서 기적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심으로 그들에게 기름 부음을 더하여 복음의 메시지와 함께하고 듣는 자의 믿음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마리오 무릴로가 오늘날 그 좋은 예입니다. 그의 예배에서는 지식의 말씀이 선포되고,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기도를 받으며 치유를 경험합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리에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구원을 얻게 합니다!
바로 여기서, 반대 속에서도 뚫고 나아가는 담대함이 큰 열매와 진전을 가져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사도라 불리며, 더 높은 차원의 기름부음과 치유 사역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4) 극적인 담대함은 극적인 수확을 가져온다
“담대히 말하다” 또는 “파레시아조마이(parrésiazomai)”가 다음에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19장입니다. 이 에베소 선교지는 복음 확장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박해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에서 그의 사역은 너무나 깊었고, 전도 범위는 너무나 넓어서 주님께서 그를 이곳에 2년 동안 머물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9:8-12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바울은 당대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에 들어섰습니다. 천 명의 신전 창녀들이 있던 이곳은 다이아나 (역자 주: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 달의 여신, 처녀성과 수렵의 수호신) 숭배가 이루어지던 곳이었죠.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일 정도로 놀라운 곳이었습니다. 그 도시 자체는 막대한 무역에다 엄청난 여행자들을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활한 전도 현장을 제공했습니다. 다이아나 숭배는 상당했지만, 바울의 존재는 작은 다이아나 상 판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람들이 우상 숭배와 속임수에서 벗어나 복음의 진리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반대운동은 다이아나 우상 판매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즉 우상 숭배와 육욕, 방탕한 행위를 노려 온, 한때 수익성 높은 사업이, 바울이라는 담대한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 공격당한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파레시아조마이(parresiazomai)’의 정의를 구현한 인물이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그 자유, 우상 숭배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려면 바로 이 권세와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영적 전쟁은 엄청났겠지만, 바울의 기름부음과 담대함은 큰 수확을 가져왔습니다! 치유와 기적이 일어났고, 12절에서 우리는 그 기적들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알게 됩니다. 바울이 사용한 손수건(그리스어로는 실제로 땀 띠를 의미함)을 보냈는데 사람들이 치유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이곳에 2년간 머물며 천막을 만들고 말씀을 전했다고 고백합니다(사도행전 20:34-35). 역사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은 낮의 더위를 피해 아침과 저녁에 일했습니다. 바로 이때 바울은 두란노의 학당에서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꾸준히 이 일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울 안에 거하신 하나님의 불과 담대함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불, 이 담대함, 이 기름 부음은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씁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바울이 몇 차례의 매질과 체포를 언급하지만, 복음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담대히 말하는 자로서 겪은 박해—육체적 박해—의 깊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21-31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바울은 사명을 알고 이해했으며, 주님을 대신하여 교회에 대한 부르심을 충실히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담대히 말하는 것은 두려움 없는 것,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성격 특성이 아니라, 위협이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자유입니다. 이 담대한 말들은 모두 말씀의 전파, 그리스도의 종들의 의로움 입증, 교회의 세움과 연결됩니다.
진리를 선포할 때 성령 안에서 담대함과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특히 이 시대에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압니다. 품위 있는 담대함은 거짓과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과의 논쟁 속에서도 침착함 유지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분노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당신이 보수주의자라면 진실을 전할 때 사람들이 당신을 혐오 발언자라고 비난하거나 동성애 혐오자, 인종차별주의자, 이슬람 혐오자, 편협한 사람, 여성 혐오자 등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친구와 가족이 당신을 배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베니 존슨, 팸 본디, 톰 홀먼 등 트럼프 행정부 내외의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 당신을 암살자의 표적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또는 버지니아 시의회 의원 리 보글러가 사무실 밖에서 불에 타 죽은 사건이나, 멜리사 호트먼과 그녀의 남편, 찰리 커크의 경우처럼 급진 좌파가 추진하는 것에 맞섰다는 이유로 실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모래 위에 선이 그어졌으며 주님께서 이 부패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진실은 우리가 이 나라를 침략하려는 전쟁과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내분과 부패, 혼란과 살인, 공포를 조장하며 어둠의 침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 나라를 공격하실 때가 임박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선이 그어졌으니, 원수가 빼앗아간 것을 되찾을 때이다! 그분은 백성과 동행하시니, 그분의 백성들이여 일어나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한다면요?
1) 누가 너희를 보냈는지 기억하라:
데살로니가전서 2:1-4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메시지는 당신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요 사람을 기쁘게 하려 나온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초점이 될 때, 성령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전하는 자유가 우리 안에서 흘러나옵니다.
2) 강하고 무장하라
에베소서 6:10-18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3) 기억하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기도 지원을 요청하라.
에베소서 6:19-20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바울은 이 구절에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바로 그 다이아나 신전이 서 있는 교회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 안에서 강해지며, 전신갑주를 입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본보기가 되어 바울 자신도 자신의 상황을 위해 기도를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쇠사슬에 매여 있는 상황에서도 바울은 더 큰 담대함을 원합니다. 그에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도록이요! 그가 쇠사슬에 매인 하나님의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지하기보다 성령께 의지하고, 끊임없이 담대함을 구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 왕국의 승리를 이루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항상 100%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고수하고 그분께 깊이 의지하며, 진리를 위해 서는 것의 중요성을 기억하고, 신성한 도움으로 담대히 말하며, 원수가 훔쳐간 것을 되찾는다면, 우리의 승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2026년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해입니다. 주님께서 모래 위에 선을 그으신 2026년은 ‘열린 책의 해’입니다. 우리 역시 목소리를 되찾을 때입니다!
사랑을 담아,
뤼키 좐슨-윌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