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의도적으로 살아가기
2026년, 의도적으로 살아가기
뤼키 좐슨-윌슨
2026년 10월 17일
이 ‘열린 책’의 계절에 의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모래 위에 선을 그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기도해 온 핵심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이처럼 역사하시는 것을 목격하는 지금, 이 시간은 흥분되지만 동시에 매우 무거운 때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보기도자로서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국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찾는 자로서, 우리는 이런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첫째, 우리가 이 땅에서 존재하는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는 그분의 영이 거하십니다. 이 계시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면,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이 역사적 시점에 단순히 구경꾼으로 존재하도록 보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구석에 앉아 있으라고 하나님께 임명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차지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9:13). 이는 하늘나라와 우리가 사는 나라(또는 국가) 모두에 참여할 것을 요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의 백성과 동역하십니다. 원수가 우리를—한 나라로서—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했기에, 안타까운 결과로 교회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관계에 대한 이해와, 개인적으로 그리고 우리가 사는 나라와 관련하여 삶의 모든 측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대사로서의 삶을 살고 우리가 사는 나라에 그 왕국의 영향력을 가져오는 법을 잊었거나, 아예 배우지 못했습니다.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3개 식민지에서 공직을 맡으려는 사람은 종교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이 나라에 개신교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우리 나라의 정치적 풍경을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경건한 영향력이 존재하도록 보장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 우리는 의도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점유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지난주 다니엘 5장을 읽으며 바벨론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다니엘의 반응을 몇 가지 나누려고 했습니다. 이 사건들은 모래 위에 선을 긋는 완벽한 예시였기에 우리가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기에, 이 점들을 시작으로 새 언약의 중요한 메시지를 다루겠습니다.
다니엘, 그 사람:
다니엘은 포로 생활 속에서 큰 의지를 가지고 삶을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요?
1)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만난 모든 통치자들은, 다니엘을 매우 아끼는 자들조차도, 그를 즉시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생존을 위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는 그가 하는 것마다 전능하신 분께 보호를 간청해야 했습니다.
2)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가운데 의도적으로 기도하는 중보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환경이 그를 좌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 기도하는 방식이나 시기
-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서 타협을 강요받는 것
- 권력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방식
3)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열방의 선지자로 부르셨음을 알았기에, 통치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선포했고 꾸준히 말했습니다.
4) 그는 예언을 통해 기도하는 말씀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강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살 수 있었습니다.
이 네 가지 덕분에 그는 벽에 글씨가 쓰여진 때에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 5장에 손이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즉 “네가 저울에 달렸는데 부족함이 있도다”라고 기록했을 때, 다니엘은 성경의 시간선을 통해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을 다루시는 일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다니엘은 책들이 열려 있고 주님께서 모래 위에 선을 그으셨음을 알았습니다. 심판이 바벨론 왕국에 내리면서 메대-페르시아 왕국이 들어올 길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학구적인 중보기도자였으며, 포로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으로 세워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붕괴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바벨론은 뚫을 수 없는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외벽은 길이 17마일, 두께 22피트, 높이 90피트였습니다. 성문은 청동으로 만들어졌고, 내벽과 외벽, 해자로 구성된 방어 체계로 도시는 매우 안전했습니다. 그들의 요새가 이처럼 견고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모래 위에 선을 그으셨을 때 심판은 확정되었습니다!
그들의 부패의 잔이 가득 찼고, 주님의 심판이 그의 종 고레스를 통해 이제 바벨론에 집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히 그 시기를 아셨습니다. 다니엘은 예언을 통해 기도하며, 부름받을 때 말하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땅에서 성취되는 순간의 증인으로 서는 등 의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역사는 기원전 539년, 즉 올해 10월로 2564년 전, 고레스가 메소포타미아 남부로 진군하여 바벨론을 마지막으로 남겨둔 채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점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흐름을 읽은 바벨론의 나보니두스는 이미 자신의 도시를 버리고, 아들 벨사살에게 맡기고 떠난 상태였습니다. 바벨론 점령은 다니엘서 5장이 암시하듯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수월하게 이뤄졌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프라테스 강의 흐름을 인근 습지로 돌림으로써 바벨론을 정복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로 인해 강 수위가 낮아졌고 그의 군대는 물속을 행군하여 강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벽의 청동 문이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열려 있지 않았다면 여전히 진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로써 약 200년 전에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사야 44:24-44:28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 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그의 종의 말을 세워 주며
그의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45:1-7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을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메대-페르시아 왕국은 바로 고레스가 통치하는 그 왕국으로, 하나님께서 약 2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신 바, 바벨론 왕국을 무너뜨릴 왕국입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 이해했습니다. 다니엘 5장에서 그는 스스로 예언하고 몇 시간 만에 그 성취를 목격합니다. 다니엘은 목적을 가지고 기도했으며, 성경 말씀을 통해 계시를 구했고, 그 계시가 가져다 준 확신으로 말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중보자로 살도록 부르시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타락한 세상 속에서 의도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바벨론 나라가 자신의 눈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에 그런 선을 그으시고 부패의 장부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열어 보이시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 영향을 목격하는 우리는 어떻게 다니엘의 행동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 우리가 무엇을 보든, 분노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하세요. 다니엘은 포로
신분이라는 것으로 분노를 품지 않았습니다. 그가 제국의 궁정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십대 시절부터 이방 땅에서 왕들의 뜻에 따라 수십 년간 포로로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미국에서 엄청난 자유를 누리면서도 종종 이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지 않습니다.
⚫ 주님 앞에서 정신을 차리고 부지런하세요. 세상이 취해 있을 때 다니엘은 주님 앞에서 정신을 차리고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기억하세요. 그들은 벽에 쓰인 글씨를 해독하라고 그를 연회에 데려와야 했습니다. 그는 다른 고위 관리들과 함께 초대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 우리 자신의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세요.
⚪ 유대인 기록자들은 다니엘이 고레스를 만났을 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러 포로들을 풀어줄 자로 그의 이름을 부른 이사야의 예언을 그에게 보여줬다고 기록합니다 (이사야 44:24-45:7).
⚪ 성경에 따르면 백성이 포로 생활에서 풀려날 때가 가까워졌을 때(예레미야 25:11-12), 다니엘은 유대인의 석방을 방해할 만한 것이 있는지 주님께 묻고는 나라를 위해 중보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9장). 우리가 WFJM(요엘 군대)에서 하는 일과 매우 유사합니다.
⚫ 그는 오직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전했습니다 (다니엘 5장). 그리스도인 안에 권세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은사, 그 권세를 사용하여 땅에 그분의 왕국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가 그 자리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누가복음 19:13). 우리가 하나님이 드러내시는 것과 반대되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칭 예언자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인터넷의 등장으로 우리는 많은 거짓 예언자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렌즈를 통해 나오는 말들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분별력을 사용해야 하며, 하나님은 두세 증인의 입을 통해 그 말씀을 확증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청중과 상관없이 우리는 의도를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께 계시와 지식, 이해와 분별력을 구할 때,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우리의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에베소서 1:17).
⚫ 우리는 의도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그 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며, 그로 인해 더욱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어머니께 기도가 이 나라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녀는 자신의 삶을 기도를 위한 연합 모임 사역(GOE)에 헌신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우리가 가진 모든 모임 (GOE)의 주제에 대해 큰 의도를 가지고 주님을 찾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주님이 제게 제 생애에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그것이 뒤집힐 때까지 큰 의도를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큰 의도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기도는 그분이 지상에서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의 백성과 협력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5-15).
⚫ 우리는 하나님의 움직이는 계시로서의 역할에 계속해서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과 메대-페르시아의 지도자들과 함께 역사 속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습니다. 유대인 기록자들은 느부갓네살이 7년 동안 풀을 먹는 짐승처럼 살던 시절 다니엘이 그를 지켜본 기록을 남겼습니다. 왜일까요? 다니엘은 이 왕의 낮아짐에서 열매가 맺힐 것을 알았기에, 그가 낮아지는 시기에도 큰 의도를 가지고 그를 섬기기를 계속했습니다. 다니엘은 사람들과 왕국들이 흥망성쇠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하나님의 계시가 땅에서 계속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 계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에 모멘텀이 있습니다. 움직이고 있는 싸움에 의지를 가지고 참여하십시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계시가 영화처럼 지나가도록 내버려 둔 다음 일어나 나가서 그 모든 열매를 누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그분이 당신을 부르신 역할로 들어가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살아내는 방법입니다.
⚫ 당신을 낮추세요. 주님께서 책들을 여실 때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2026년이 열린 책들의 계시를 가져올 때, 우리 중보자들은 자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겸손히 기도하는 자로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당 플랫폼에 심판이 내리는 것을 봅니다. 책들이 열렸습니다. 챨리 커크의 죽음에 대해 의회는 묵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연방정부 예산 셧다운 상황 속에서도 민주당 플랫폼의 의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이 시간에 미국인들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하십시오. 민주당은 우리 군인, 주방위군, 노인들, 정부 지원 복지 및 의료보험을 받는 우리 국민보다 비시민권자와 범죄자들의 복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상황이 너무 미쳐버려서,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온건 민주당원들은 공화당으로 이탈할 것입니다. 존 페터먼(민주당 상원의원)을 보세요! 그들의 의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부패를 이 나라의 심장에서 뿌리 뽑으실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부패한 지도자들이 남긴 공백을 메울 지도자 자리를 맡을 다른 이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또한 부패한 미디어의 쇠퇴를 목격하고 있으며, 결국 그 몰락을 보게 될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역사적인 가자 평화 정상회담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에서, 그리고 이집트에서 체결된 이 조약에 서명한 중동 국가들로부터 영예를 받았습니다. 30개국이 이 행사를 지지하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언론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오바마나 바이든이 이룬 성과였다면, 언론은 24시간 내내 보도하고 인터뷰를 연달아 진행하면서 찬사를 쏟아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간신히 발표만 하고, 이 조약에 대한 바이든과 오바마의 의견만 보도했습니다. 물론 바이든은 그 토대를 마련한 공을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개월 동안 세계에서 일곱 개의 분쟁을 성공적으로 종식시켰습니다. 그는 평화의 대통령으로 칭송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무시하거나 오히려 박해합니다.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중동 평화 조약을 맺었고,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 편에 섰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이는 주님께서 2주 전 제게 주신 꿈과 같습니다. 서명식은 위엄 넘치는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는 무장 해제되기 전에 반대파를 체포해 거리에서 처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마스의 무장 해제를 촉구하는 이유입니다. 왜 언론은 이 끔찍한 사건들을 보도하지 않는가요? “이스라엘은 나쁘다: 팔레스타인은 좋다”라는 그들의 내러티브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보자로서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일들에 의도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분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주시는 계시에 기도하지 않는다면, 필요할 때 행동하지 않고 방해 요소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투표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특정 직분을 감당하라는 부르심을 받고도 공직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말씀의 추진력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새 언약 안에서 의도적으로 살기
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한 가이드를 위해 주님께 말씀을 청구한 지도자들의 새 언약 사례들을 들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에 기반한 견고한 교회들 안에서 조차 성령님의 역사나 선지자 직분이 쓸모 없어졌다는 신념이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생각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더욱 강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수많은 자칭 “예언자들”이 주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라고 선포한 것들이 서로 모순되는가 하면, 2020년 선거, 코로나, 적그리스도의 정체(누가 적그리스도인가), 특히 주님의 재림 날짜에 대한 예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결과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교회에 큰 혼란과 낭패를 초래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많은 목사님들이 잘못된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단순히 그들의 양떼가 세상에 퍼진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것뿐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바로 이 때문에 신자들의 분별력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이 예언적 중보 사역의 창립자의 딸로서, 저는 당연히 그들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도행전 13장을 함께 살펴보며 초기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확장하기 위해 교사이자 예언자인 사람들에게 크게 의존했는지 알아봅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천국을 확장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이들의 다양한 배경을 간략히 살펴볼 것입니다.
사도행전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바나바는 키프로스 출신의 레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4장에서 이 관대한 사람이 예물을 가져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초기 교회에 분배하도록 한 모습을 처음 만납니다. 레위인으로서 그는 율법에 대한 탄탄한 기초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바울)을 찾아내어, 그의 회심이 진실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사도들에게 그를 보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첫 선교 여행에서 담대히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참된 말씀의 교사였습니다.
니게르라 불리는 시므온. 많은 학자들은 그를 갈보리로 가는 길 마지막 구간에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 시므온으로 여깁니다. 그는 북아프리카의 도시 키레네 출신으로, 오늘날 리비아에 해당합니다. 이 도시는 헬레니즘 중심지였습니다. 한때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면서 헬레니스트들은 그리스 문화와 근동 지역의 관습을 결합했습니다. 그의 아들들도 로마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서 16:13)
루기오 역시 키레네 출신으로, 초기 교회의 예언자이자 교사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불과 300마일 떨어진 안디옥에서 핵심 인물이었으며, 이곳은 이방인 교회의 본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16:21에서 그를 바울의 친척으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는 오순절 이후, 즉 성령이 부어지신 지 약 15-18년 사이의 일입니다. 이제 이 인물들에 대한 배경 지식을 조금 더 알게 되었으니, 그 성경 구절을 다시 살펴봅시다:
사도행전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이후 선지자들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다만 우리는 누구의 말과 무엇을 들을지 분별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지난주에 제가 언급했던 청년들, 그 사회 정의 전사들, 심지어 이슬람에 빠진 자들까지도 일으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분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실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난주에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나엔 사람들을 불러내라!” 저는 일어나 밖으로 나가 낯선 장소들, 대학들, 아이비 리그 대학들, 도심 속 빈민가들, 뉴욕, LA 같은 곳들에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일어나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라고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기름부음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 무게를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저는 이 젊은이들이 교실에서, 상점에서, 시위 현장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이 나아가 대중에게 진리를 말하고 전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영상이 제 눈앞에 하나씩 번쩍이며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잠에서 깼습니다.
이 꿈을 꿀 당시 저는 마나엔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철자를 틀리게 알고 있어서 처음엔 성경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도행전으로 인도하셨고, 사도행전을 읽어나가던 중 그를 발견했습니다.
사도행전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헤롯 안티파스와 함께 자란 마나엔. 이 “함께 자랐다”는 표현은 그들이 궁전에서 함께 성장했음을 의미하며, 헤롯의 양형제나 이복형제였을 수 있습니다. 이 헤롯은 세례 요한을 참수하고 예수님의 재판 중 하나를 주관하며 십자가 처형 전에 그분을 조롱한 바로 그 인물입니다.
마나엔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변화를 상징합니다. 그는 죄와 박해와 살인의 집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 갔습니다. 헤롯의 집에서 자란 자로서 그는 탁월한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창한 이중언어 구사자였으며 제국 정치에 정통했을 것입니다. 1세대 신자들 사이에서는 흔치 않은 사회적 접근성과 자원을 소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막강한 권력자들을 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셨을 때, 그의 삶은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헤롯과 마나엔의 대조는 그 자체로 메시지입니다. 간단히 말해, 그는 부보다 진리를, 권력보다 겸손을, 영향력보다 은혜를 선택했습니다. 헤롯은 벌레에게 먹혔고, 마나엔은 영원한 왕국을 섬기기로 선택했습니다. 마나엔은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초기 교회에서 중요한 선교 사역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주님을 찾던 예언적인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세대의 마나엔들을 부르라고 말씀하실 때, 이것은 그분이 이 세대를 땅 위에서 그분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 준비시키고 계심을 제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나엔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다니엘처럼 의도적으로 살아가며, 자신에게 맡겨진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걸어가는 곳마다 그분의 왕국을 드러내며, 받은 교육과 하나님이 주신 이해와 계시를 활용하여 그분이 제공하시는 자원으로 복음을 널리 전파할 예언적인 젊은이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2026년은 열린 책의 해입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대한 그분의 계획과 목적 위에 이 나라를 리셋(reset)하시면서 우리는 어려운 일들을 목격할 것이고 심지어 격동의 시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마나엔 같은 자들을 일으키시고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령이 이끄시는 통치의 선례를 세우시는, 영광스럽고 승리하며 역사를 바꾸는 사건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축복과 사랑을 담아,
뤼키 좐슨-윌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