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형의 믿는 자들의 일어남

뤼키 좐슨-윌슨

2025년5월 9일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카톨릭 교회, 해방 신학, 문화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탐구해 왔습니다.

특별히 지난 주에는 주님께서 주신 수술대 위의 여성에 대한 비전을 나누었으며, 이번 메시지의 목적을 위해 그 비전을 간단히 복습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수술대 위에 있는 미국

 

2020년 여름 주님께서 제게 우리 나라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미국은 한 여성의

형상으로 나타났는데, 큰 참변을 겪은 후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앞에 놓인 수술대

위에 있었습니다. 그 몸의 모든 부분이 이 사고로 인해 손상된 상태였고, 주님은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매우 분주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손은 너무도 빠르게 움직여 제

육안으로는 흐릿하게 보였지만, 성령을 통해 그분이 집중하고 계신 부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머리 (주님을 떠난 생각들,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따랐고, 거짓 교리와 사회정의 이념을 받아들였습니다)
  • 심장 (마음이 주님께서 멀어졌고, 이웃에 대한 원망과 용서하지 못함을 품었습니다)
  • 위 (속임수와 타협의 독물을 받아들여 영혼을 오염시켰습니다)
  • 자궁 (낙태로 인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 무릎 (자아, 기술, 탐욕이라는 우상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 발 (이 모든 결과로 하나님을 떠나 미혹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우리 나라를 수술하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손수 상처를 만지실

때마다, 그 부위는 치유되고 그분의 손에 의해 봉합되었습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내내 금빛의 빛이 그 여성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분의 자비 가운데 주님은 참으로 이 나라의 영혼을 치유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지금 우리가 바로 이 시점에 와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위해 깊숙이 일을 진행하고 계시며, 그것은 교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밤 우리는 하나님께 식어버린 마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나라의 가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 구원받지 못한 자들, 즉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복음의 진리로 인도하는 것
  •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길로 나라를 이끌고 영향력을 끼쳐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것
  • 성벽 위의 파수꾼이 되는 것

우리는 성경에서 두 가지 훌륭한 본보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에서 나오며, 그것은 다윗입니다. 그는 왕이자 제사장이며 선지자요 사도였고, 하나님 아래 이스라엘 지파들을 하나로 묶은 위대한 통합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신약에서 나오며, 그것은 초대교회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를 통해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 임했던 하나님의 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를 위해 보여주신 하나의 본보기를 우리는 거기서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1-7

1 때에 제자가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무리가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도에 복종하니라

사도행전 6장은 초대교회의 급성장을 이룬 구성원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이 부어진 지 거의 1년이 되어가고 있으며, 초대교회는 급속한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 히브리파 유대인들: 이들은 율법(토라)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삶은 성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 헬라파 유대인들: 이들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 공동체)의 일원이었습니다. 이는 수세기 전 앗수르, 바벨론, 메대와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현재의 로마 제국으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들은 문화적 요소들, 복장, 삶의 방식 등을 수용했고, 일부 유대인들은 올림픽 경기에도 참여했습니다.
  • 제사장들: 이들은 물론 성경에 충실한 자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을 안팎으로 교대로 복무했습니다. 총 24개의 제사장 반열이 있었고, 이들은 주마다 한 번씩 순환하여 매일의 성전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사도들이 35에이커에 달하는 성전 산에서 매일 말씀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사장 반열은 두 번의 순환을 마쳤고, 이제 세 번째 순환을 시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은 많은 제사장들이 믿음에 순종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 사도행전 12장에 가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퍼져나가게 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을 위대한 통합자로 삼아 복음 진리의 메시지를 고수하는 하나의 신앙 체계 아래 다양한 민족 집단이 연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 제사장 계열의 사람들, 헬라파 유대인들, 그리고 곧 접붙임 받게 될 이방인들까지—모두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함께 모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초대교회가 로마 제국 안에서 문화를 점유하고 변화시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땅 전역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이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박해가 심해졌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성장이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초대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의 성장을 거의 90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로마서를 기억하십시오. 제 개인적으로도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편지 중 하나인데, 이는 로마 교회를 향해 쓰여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도나무에 접붙임 받은 로마의 믿음의 사람들의 수가 그토록 많아져서, 그들에게 이런 놀라운 서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로마 군병들 중에서도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고린도전후서, 데살로니가서, 골로새서, 갈라디아서 등 각 서신서들은 모두 로마 제국 내에 존재하던 이 이방적이며 헬라 문화 가운데 존재했던 에클레시아 교회 공동체에게 쓰인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모인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들이 겪었던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확장되었고, 타락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삶을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제국 전역에 만연해 있던 부패와 우상숭배와 이방 신앙에서 벗어나, 환경이나 박해나 자신들이 살아가던 문화적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 헌신된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유대 공동체는 이방인들과 함께 살아가되, 할례를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배워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옛 방식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새 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이 따라가도록 남겨주신 길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박해를 겪었고, 굶주림을 경험했으며,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노예 상태에 처하는 등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7장에서는 우리가 보게 될 많은 순교자들 가운데 첫 번째 순교자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바로 이 본문에서 과부들을 섬기기 위해 선정된 집사들 중 첫 번째로 언급된 스데반 집사입니다. 그는 첫 순교자가 되는 영광을 얻었고, 사도행전 6장 8절은 그가 큰 지혜를 가졌으며, 기적과 표적과 이사들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단지 식탁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섬긴 것 이상을 했습니다—그는 하나님을 향한 불로 타오르고 있었고, 주님께서는 그를 강력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사울(후에 바울이 됨)이 주도한 박해를 피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교회가 더욱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로 숨어들었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공격이 심해질수록 그들은 그들이 뿌리내린 곳에서 여전히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퍼져 나갔고 믿는 자들의 수는 늘어났다고.

왜 그 때 믿는 자들이 그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졌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우리의 배경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종, 국적, 피부색, 나이, 성별—이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과거의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께 우리 삶에 들어오셔서 주인이 되어 달라고 구하고,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이중 시민권이 성립됩니다 (요한복음 3:16).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로서, 이 땅 위의 왕국 안에 파송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책임은 교회 안에서든 나라 안에서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하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분을 구하는 것입니다.

 

2017년 말 주님께서는 제게 “2018년은 연단의 해가 될 것이며, 새로운 부류의 믿는자들을 일으키는 해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부류의 믿는자들’을 위해 7년 넘게 부르짖어 왔습니다.

저는 주님께 그들이 어떤 모습일지, 오늘과 미래에 어떻게 그들을 사용하실지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를 공부하면서, 저는 그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 23절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바울은 에베소서 4장 3절과 13절에서 그들을 교회에서 가르쳤으며,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3장 8절에서 동일한 메시지로 교회를 권면했습니다. 이 ‘새로운 부류의 믿는자들’은 어떤 교단이나 소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좇아 함께 행하며, 말씀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자기 나라의 성벽 위에 선 파수꾼처럼 굳건히 서서, 절대 하나님의 나라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 젊은 자와 나이든 자, 남자와 여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한 ‘지붕’ 아래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메뚜기 떼가 먹어버린 것들로부터 우리가 치유될 수 있으며, 바로 이곳에서 외부에서 우리를 향해 전쟁을 일으키는 싸움에 대비해 우리가 강해지고 훈련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연단이 우리를 마태복음 28장 19-20절과 마가복음 16장 14-18절의 지상 대명령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저는 오늘날 드러나고 있는 교회가 과거의 교회와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나눴던 것처럼, 카톨릭의 예수회(Jesuit) 조직이 미국 전역의 교회 안으로 침투하여 사회복음, 즉 자유/해방신학이라는 이름의 문화적 마르크시즘을 퍼뜨렸습니다. 우리는 이런 오염된 교회가 성경에 기반한 건전한 교리를 주장하는 대신, 사회정의를 외치는 운동가 집단으로 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분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쪽은 ‘사회적 교회’입니다.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사회정의 운동에 앞장설 것이며, 타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타협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반대편에는 ‘정련된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길을 갈망하며, 그것이 자기 삶, 가정, 도시, 주, 그리고 나라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이들로 구성됩니다.

교회는 나라 안에서 무엇을 하도록 부름받았습니까? 가지 핵심적 포인트는:

  • 에스겔은 교회가 성벽 위의 파수꾼이 되도록 부름받았다고 말합니다 (에스겔 3:17, 에스겔 33:7).
  • 마태복음 28장과 마가복음 16장은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름받았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28:19-20, 마가복음 16:14).
  • 시편 89편과 예레미야 9장은 우리가 정의와 공의로 나라에 영향을 미치도록 부름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입니다. 성경은 시편 89편 14절에서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를 거하시는 처소로 삼으신다고 말씀하시며, 예레미야 9장 2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거하기를 원하시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누가복음 19장은 우리가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일에 충실히 임하도록 부름받았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9:13).

 

그렇다면 교회가 부름 받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서는 우리에게 세속 문화를 수용하거나 복종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음을 가르칩니다. 바울은 이 주제를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6장에서 그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왜일까요? 우리는 하나의 몸이 되도록 부름 받았지, 카톨릭 교회처럼 거대한 혼합체가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세속 문화(대부분은 도덕적 타락과 관련됨)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게 되면, 우리는 세속적 체제와 멍에를 함께 메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리고 그 체제는 교회라는 몸에 독이 됩니다. 몸이 독에 물들면, 어떤 것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4장 17-19절은 이 문제를 매우 아름답게 다루고 있습니다: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허망한 생각으로 행할 때, 우리는 헛되고 타락한 상태의 마음으로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의 깨달음을 어둡게 만듭니다—그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으로 빛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되고, 하나님에 관한 일에 대해 무지하게 되며, 진리에 대해 눈멀게 됩니다. 그리고 양심이 감각을 잃게 되어, 결국에는 방탕과 부정함, 탐욕으로 자신을 내맡기게 됩니다.

교회가 이런 수준의 타협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2024년 어느 날 백악관 잔디밭에서 트랜스젠더 남성과 여성들이 웃통을 벗고 뛰어다니며, 바이든 대통령이 그들을 축하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바로 3일 전, 미네소타 대법원이 이렇게 판결한 것을 보았습니다—“여성이 웃통을 벗거나 가슴을 노출하는 것이, 현재 미네소타 법률상으로는 본질적으로 ‘외설적(lewd)’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즉, 이 말은 지금은 여성이 상의를 벗고 공공장소에 있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 주지사가 추진한 문화적 이념과 부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주지사는 지난해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이런 일에 맞서기에는 너무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얼마나 미끄러운 경사면 위에 서 있는지를 정말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까?

교회는 우리의 자녀들이 이러한 타락함에 노출되고 있을 때, 방관자처럼 옆에 앉아 있으라고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텍사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이비 집단은 어떻습니까? 샤리아 법으로 운영되는 그 집단 말입니다. 현재 ‘종교의 자유’를 근거로 제안되고 싸우고 있는 이슬람 복합체는 무엇인가요? 얼마나 많은 중동 국가들이 한때는 기독교 국가였는지 아십니까? 그러다가 이슬람 공동체들이 그곳에 들어오고, 그들의 이념으로 문화를 영향력 아래 두면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영아 살해는요? 지금 워싱턴 주에는, 출생 후 28일 이내의 영아 사망에 대해 조사를 금지하는 법안이 주지사의 책상에 올라가 있습니다. 미네소타는 이미 그 법을 시행 중입니다. 그리고 낙태 시술이 실패하여 만삭의 아기가 살아서 태어난 경우, 의사의 개입을 금지하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어서 그 아기들이 죽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살인”이라고 부릅니다. 버지니아 역시 이와 유사한 법안을 가지고 있으며, 캘리포니아도 이런 미끄러운 경사면 위에 서 있습니다.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희 어머니는 수십 년 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보셨습니다. 교회여,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선을 그어야 개입을 시작할 것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분명히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국가가 우리를 죄로 이끄는 영역으로 부르거나, 우리를 타협의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경우, 그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거나 순종하라고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명확히 하자면 저는 지금 폭동을 선동하거나, 사람들이 횃불과 쇠고랑과 공성추를 들고 주지사 관저나 주 대법원을 습격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죄와 인류에 대한 범죄와 살인으로 이어지는 상황들에 대해 침묵하라고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4:18–20절, 5:27–33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지도자들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이 갈등은 점점 고조되어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바리새인 공의회는 그들을 죽였을 것입니다.

저는 많은 기독교 산부인과 의사들이 은퇴하게 된 한 가지 이유가, 캘리포니아 같은 주에서 기독교인 의사들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낙태 시술을 거부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 폐지되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많은 교사들이 직장을 떠나게 된 이유도, 생물학적 성별이 아닌 학생이 원하는 성별을 지지하도록 강요 받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같은 이유로 훌륭한 상담사들마저 잃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선호하는 성별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허를 박탈당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아이들이 이런 혼란을 겪어도 그저 ‘말괄량이 단계’로 여겨졌고, 대부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극복했습니다. 성인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 이라고 불렀고, 그들은 사회에 대한 위험 요소로 간주되어 정신병원에 입원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교회가 입법자들에게 이러한 이슈들에 관해 편지를 쓰고 연락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외설적이고 방탕한 법안들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투표로 축출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부패한 활동가/정치인들에 반대하여 출마한 사람들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는 문화에 영향을 끼쳐야 할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협된 삶의 길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지침서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부류의 믿는자들입니다. 우리는 의로움을 위해 일어서고, 정의가 우리 나라에 통치하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자들 가운데 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독특한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이 우리가 가진 자유를 헌법에 명시적으로 보장받는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에 속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유들을 건국의 아버지들이 의도한 대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유들을 거의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취소 문화(cancel culture)’ 때문에 두려워서 침묵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선포할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진보 활동가들 때문에 학교나 직장에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다시 말하지만 활동가들 때문에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심지어 낙태 클리닉 근처에서 기도하는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의도한 신앙의 자유를 사용하지 않았고, 너무 오랫동안 침묵했으며, 그 결과 진보 활동가들이 들어와 우리 권리를 빼앗아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와서 많은 포로들을 자유케 했습니다. 그는 취임 첫날, 1월 6일 정치범들을 석방했습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 생명을 위한 전국 행진 전날 밤, 그는 사면 문서에 서명했고, 낙태 클리닉 밖에서 기도했다는 이유로 바이든의 부패한 법무부에 의해 투옥된 할머니들, 아버지들, 무고한 자들을 보호한 자들을 석방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과 환난에 대비시키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저는 말하고자 합니다. 이슬람 사이비 집단들은 텍사스를 포함한 미국 내 여러 곳에서 그들이 출현하게 될 경우,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심각한 시험과 환난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제안하고자 합니다. 부패한 주지사들과 주 대법원들이, 태아들, 성정체성 혼란을 겪는 아이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자들을 변호하는 중보자들, 목사들, 교사들, 그리고 의료인들에게 상당히 큰 시험과 환난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로들을 자유케 하셨고, 그의 법무부는 무고한 자들을 억압하는 자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골든 에이지’의 완성을 보고자 한다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의 영적 흐름과 기세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새로운 부류의 믿는자들’이 일어나 의를 위해 서야 합니다. 우리는 부패한 체계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 나가야 하며, 그러다 보면 결국 그 체계는 붕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2016년의 타겟(Target)상점에 대한 불매운동을 기억하십니까? 타겟이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성 구분 대신, 개인이 동일시하는 성별에 따라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허용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교회는 강력하게 대응했고, 그 첫 분기 안에 타겟은 그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들 눈에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 1월 “우리의 예언적 시간표를 인식하라”라는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은 비젼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그것을 상기시켜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시면서 쓸어내심

2024년 3월 3일 주일 나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곳은 부패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부패는 문자 그대로 무거운 그을음처럼 보이는 어두운 물질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땅 전체에 너무 깊게 겹겹이 쌓여 있어서, 산도, 호수도, 계곡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들과 계곡들, 심지어 평균 깊이가 1마일에 달하는 그랜드 캐니언조차도 모두 평평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패가 땅의 모든 틈과 갈라진 곳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서부 해안에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울고 계셨습니다—그분은 울면서 중보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약 150피트의 높이로 보였습니다. 그분은 북서쪽 모서리에서 남쪽을 향해, 그리고 다시 북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움직임으로, 주님은 동쪽으로 나아가며 우시면서 또 쓸어내셨습니다. 우시고 또 쓸어내셨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부패를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지나간 뒤의 땅은 깨끗하고, 선명하고, 반짝였습니다. 그분은 땅을 정결케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그랜드 캐니언에 도달했을 즈음, 나는 그을음이 다시 서부 해안을 따라 줄지어 쌓이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동부 해안에 도달하여 돌아서자, 나는 그 땅이 이미 거의 다시 부패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패는 그분이 처음 시작하셨을 때만큼이나 심각해 보였습니다.

주님은 다시 서부 해안으로 걸어가셔서 같은 절차를 시작하셨습니다—중보하시고, 쓸어내시고, 땅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부패가 뿌리째 뽑히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다시 그랜드 캐니언에 도달했을 즈음—그리고 나는 주님께서 그랜드 캐니언을 특별히 지목하신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 그 엄청난 크기로 인해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며,
  • 1마일 깊이의 틈이 채워졌다는 것은 부패의 심각성을 보여주며,
  • 또한 그곳은 다음 시간대로 진입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도달했을 때, 그분은 돌아서서 뒤를 바라보셨고, 서부 해안을 따라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의 한 줄을 보셨습니다. 그 뒤에는 또 다른 줄, 그 뒤에도 또 다른 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고,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드러내신 부패를 보았기에, 그들은 그분이 행하신 정결케 하심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이 1999년부터 2020년까지의 중보자들의 사역과 협력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시기가 바로 “독수리의 모임(Gathering of the Eagles)” 기간입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의 공백 기간 동안, 이 나라는 지난 세기의 그을음으로 다시 채워졌고, 그것은 낙심스럽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주님께서 부패의 뿌리를 드러내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제 땅을 되찾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했기에, 그분은 신실하게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친구들이여, 우리 주님은 다시 우리 땅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직 우리 나라를 외면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주님은 중보자들과 협력하여 땅을 정결케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올라오는 자들은 바로 그 의의 지팡이들—새로운 부류의 전사들입니다—나는 그들을 여러 환상 가운데 보았고, 우리는 수년 동안 그들을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영적 영역에서 이루어진 사역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막 재임 첫 100일을 기념했습니다. 나는 그가 우리 나라를 보호하고, 의로운 기준으로 문화를 영향력 있게 바꾸며, 이 나라를 다시 하나님께 돌이키기 위해 발행한 몇 가지 행정명령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는 국경을 폐쇄하여 위험한 카르텔과 갱단 구성원들을 제거했습니다. 인신매매나 마약 밀매에 가담하는 자들은 그들이 온 곳으로 돌려 보내지고 있습니다.

편향된 언론 매체에 대한 납세자 보조금을 종료했습니다 (기억하세요, 언론은 첫 번째로 무너질 공입니다).

범죄자를 추적할 수 있도록 법 집행 기관을 강화했습니다 (법의 지배).

군을 강화하고, 군대에서 트랜스젠더들을 제거했습니다.

미국 역사에 진리와 제 정신을 회복시켰습니다.

연방 정부에 생물학적 진리를 회복하고 있습니다. 이 2025년 1월 20일에 서명된 행정명령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단 두 성별만 존재한다: 남성과 여성”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여성 스포츠에서 남성들을 제거합니다. 그러나 이 행정명령은 의회에 의해 법제화됨으로써, 수정되는 순간에 ‘인격(personhood)’을 부여하는 법적 선례를 세우는 시작이 됩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내려졌을 때, 그것은 태아에게 “인격”이 없다는 이유에 근거해 결정되었습니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것을 알고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해 보았고, 우리가 기도해 온 ‘수정될 때의 생명법’이 실제로 추진력을 얻게 될 선례가 지금 세워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친구들과 교회 공동체 여러분, 나는 여러분께 많은 정보를 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입니까? 우리는 앉아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들이 역사 속의 훌륭하지만 단기적인 조치들로 사라지게 둘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는 우리가 부름받은 ‘새로운 부류의 믿는자들’로서 일어나, 워싱턴,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등지의 주지사들과 주 의원들을 상대로 맞서 싸울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의 대체자들과 그러한 잔혹한 법안들에 투표한 입법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할 것입니까?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위해 펼치고 있는 공의와 정의의 길을 따를 것입니까?

주님은 한동안 우리 나라 쓰레기를 우시면서  쓸어내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해 오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행동을 찾고 계십니다. 그분은 ‘새로운 부류의 입법자들, 언론인들, 교육자들,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 그분께서 이루신 사역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분 곁에 설 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제는 새로운 부류의 믿는자들이 일어나 우리의 입장을 취해야 할 시간입니다!

 

축복과 사랑을 드리며,

뤼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