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적 음성들

악마의 삼각지대에서의 하나님의 인도하심

Ricci Johnson-Wilson

2026년 2월 6일

지난주 「혼돈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찾다」라는 메시지 이후, 소중한 한 중보자가 다음 날 아침 저에게 연락을 주었습니다. 허락을 받아 그 내용을 나눕니다.

 

이 시기에 “예언자들의 음성”에 대해 마음을 보좌 앞에 두고 묵상하던 중, 주님께서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해 주셨던 한 말씀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이 땅에 계실 때 상선 해기사(merchant marine)였습니다. 아버지는 한 번은 ‘악마의 삼각지대(Devil’s Triangle)’의 끝자락을 항해하던 중 겪은 경험을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그 지점을 통과하던 중 갑작스럽게 짙은 안개가 끼었고, 그 안개는 너무도 짙어서 아무도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항해 계기들조차 더 이상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가리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항해를 계속하던 중, 갑자기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한쪽은 왼쪽으로, 다른 한쪽은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었습니다. 그 순간 선장이 제 아버지에게 다가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전하는 말입니다)

“선장님, 항로는 이미 수동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항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장은 그 말에 동의했고, 항로에는 아무런 변경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설정된 항로를 따라 나아가자 배는 마치 오른쪽 갈림길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항로에 어떤 변경도 주지 않고 계속 나아가자 마침내 배는 안개지대를 통과했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에 안개가 끼면, 항로를 바꾸지 말아라. 결국 안개는 걷히게 되어 있다. 그때가 되면 다시 분명히 보고 항로를 잡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제 아버지는 예수님을 따르는 분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 이 나라는 ‘전쟁의 안개(fog of war)’라 불릴 수 있는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악마의 삼각지대라 할 만한 정점(tipping point)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WFJM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기도의 항로를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배를 반대편까지 반드시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기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항로를 정하셨음을 이해하는 한 중보자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이 아직 어린아이였던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오늘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이 길 위에 그들을 세워 두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지금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악마의 삼각지대를 항해하는 중보자로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항로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악마의 삼각지대란 과연 무엇일까요?

지도에서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버뮤다 삼각지대(Bermuda Triangle)입니다. 이곳은 갑작스러운 안개가 너무도 짙게 내려, 아주 숙련된 항해사조차 혼돈에 빠뜨리는 지역입니다. 수많은 유명 조종사들이 이 지역 상공을 비행하다 심각한 방향 감각 상실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지형지물을 잃어버리고, 계기판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항로를 크게 벗어나 연료가 고갈될 때까지 비행하다 바다로 추락했고,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선박도 마찬가지입니다.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고, 계기들이 속이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 항로를 이탈해 대서양의 광대한 바다로 흘러가 버립니다. 경험과 지혜는 안개가 낄 때 계기를 따르라고 가르치지만, 그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수많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결국 전쟁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게 됩니다.

 

제가 자란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 지역은 가시거리가 마일이 아니라 야드 단위로 떨어질 만큼 짙은 안개가 끼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가시성 제로’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프레즈노를 오가는 비행은 계기에 대한 절대적 신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가장 노련한 조종사조차 안개로 인해 비행이 중단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안개가 낀 2026년을 살아가는 중보자인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지금 우리가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악마의 삼각지대의 정점을 통과하도록 인도하는 핵심 계기판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극심한 대가를 치르며 우리를 목적지로 이끌기 위해 세워진 예언자들의 남은 자(remnant)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주님의 승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항로를 이탈하게 만들려는 매우 짙은 안개 속에 있습니다. 이 메시지들의 주된 목적은, 이 전쟁의 안개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항로로 우리를 다시 돌려놓는 데 있습니다.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있습니다. 부패는 깊습니다. 2026년이 “열린 책의 해(The Year of Open Books)”가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지난해 9월부터 말씀해 주셨지만, 지금 드러나고 있는 부패와 밀실 거래 규모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거리에는 혼란이 있고, 2026년 선거를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이 점은 한 해 내내 진행될 것이니 기억해 두십시오). 경제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어둠을 뿌리째 뽑아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엡스타인 파일을 잊지 맙시다.

 

잠시 멈추어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사악하고 부적절한 행위에 연루되어 있었다면, 지난 6년간 권력을 쥐고 이 파일들을 보유하고 있던 민주당은 그를 영원히 매장시키기 위해 모든 증거를 공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은, 조작되고 근거 없는 혐의로 그를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 전 파산 신청 당시 로스차일드의 구제금융과 관련된 문제 역시, 하나님께서는 이것마저 사용하여 나라에서 어떤 것을 끊어내고 계십니다. 그것은 부패로부터의 분리이며, 새로운 것에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2016년 대선 이전, 저는 하나님께서 트럼프의 인생에서 경험한 모든 성공과 실패, 모든 승리와 패배를 사용하여 미국을 치유하시는 환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진실이 드러나는 이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담대함을 주시도록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사용해 미국을 치유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원수는 지금 우리가 부패, 경제 위기, 전쟁으로 완전히 포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혼란은 사방에 있고, 원수는 안개를 끌어들입니다. 이는 두려움과 혼돈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도 하나님을 놀라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입니다.

계기판의 계기들은 주님에 의해 수동으로 이미 설정되었습니다. 목적지는 고정돼 있습니다. 우리는 항로를 이탈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25년에 걸친 훈련이 우리 요엘 군대/ WFJ에게 가르쳐 준 것은 단 하나입니다. 악마의 삼각지대를 통과할 때, 항로를 바꾸지 말아라.

 

예언자의 부르심과 목적

 

지난주 주제를 이어서, 이 시기를 항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예언자의 부르심과 목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목표는 혼돈 가운데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찾고, 그 말씀을 붙들고 승리할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란 무엇인가요?

히브리어로 예언자는 “나비(Navi)”, 즉 “부름 받은 자”, “선포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선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섬기는 분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예언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백성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자의 부르심과 목적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모세의 삶에서 보듯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백성을 종살이에서 구출하고, 백성을 덮었던 율법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세웠습니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시편 전반에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동시에 예언자였습니다.

  3)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가르치는 것

사무엘 선지자처럼 분별력을 세우고, 성경을 풀어 줍니다. 주님의 말씀을 백성 위에 선포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위에 머물게 합니다.

 

이제 남은 요점들을 위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과 악 사이의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를 살펴보고, 거기서 우리가 이 시즌을 항해하는 데 도움이 될 교훈들을 얻고자 합니다.

 

열왕기상 18장 17–18절

 

17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18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여기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봅니다.

 

예언자의 부르심은

 

     4) 종종 오해받고 왜곡됩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에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나아가 주님—곧 야웨께서 달리 말씀하실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합은 그 책임을 엘리야에게 돌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기에, 그 죄가 나라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역대하 7장에서 솔로몬과 언약을 맺으시며, 백성들이 가뭄을 겪을 때 회개하면 비를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그들이 죄를 범하면 가뭄을 겪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언약적 약속은 이후의 모든 왕들이 알고 있어야 할 것이었고, 아합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5) 속임의 안개 가운데 진리를 가져오는 것:

이 가뭄은 아합과 그의 아버지의 죄, 곧 바알 숭배로 인해 초래된 것이며, 엘리야는 이 진리를 통해 즉시 아합의 속임을 베어 가릅니다.

 

열왕기상 18장 19–24절

 

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6) 백성을 회개로 부르는 것:

예언자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 위에 기름부음 또는 직임(멘틀)이 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죄 가운데 계속 머물 것인지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만듭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언자의 교훈이나 책망 아래에서 참으로 찔림을 받게 됩니다.

 

열왕기상 18장 25–35절 (계속)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1)두 스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7) 오직 한 분 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는 것:

엘리야는 바알을 조롱함으로써 그들이 섬기던 이 신의 무력함을 드러냅니다.

 

  8) 깨어진 틈을 수리하는 것: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리함으로써(30–31절), 엘리야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백성에게 보여줍니다. 36절에서 기도를 시작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겸손을 보여줍니다. 그의 목적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깨어진 틈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회개하여 기도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역대하 7:14 요약).

 

  9) 하나님의 능력과 효력을 증명하는 것:

엘리야는 제단을 쌓고 세 번이나 물을 붓게 했습니다. 제물에 불을 붙일 생각을 하는 자라면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모든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런 어리석은 일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련한 것으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10) 타협에서 백성을 불러내는 것:

그들은 가뭄을 끝내기 위해 바알과 아세라에게 자기 자녀까지 제물로 바칠 정도로 멀리 떠나간 백성들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언약적 기도로,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이며, 참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던 백성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실제로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몇시간 동안 헛되이 춤추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모습을 지켜본 후, 하나님 앞에 엎드린 엘리야의 모습은 그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음이 틀림없습니다.

 

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11) 어둠의 영역 위에 하나님의 심판을 드러내고 집행하는 것: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는 이 역할을 아름답게 수행합니다. 전투의 무대가 갈멜 산인 이유는, 바알 숭배자들이 그곳을 성스러운 고지로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 가물었던 산등성이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가뭄을 끝내는 비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엘리야는 불과 비 모두를 다스리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가나안의 폭풍신이 아님을—증명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악을 제어하는 자들이지만, 이세벨이 사용한 것과 같은 악한 영적 권세를 상대하려면 예언자적 멘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12) 하나님의 얼굴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겸손하게, 반복적으로, 그리고 기대하며 일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선과 악 사이의 장엄한 전투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바알의 선지자들 사이의 싸움입니다. 이세벨 아래에서 왕궁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강력해 보였을지라도, 갈멜 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계를 두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국가와 임금, 그리고 이세벨 자신에게까지 그분 자신을 실제로 드러내시기 위한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세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상징적 존재가 됩니다. 반대로, 예언자는 하나님을 선포하는 자입니다.

 

민족을 향한 예언자들

 

민족을 향한 예언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이 이를 말해 줍니다. 정확한 꿈이나 말씀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예언자는 아닙니다. 예언적 은사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 예언자임을 의미하지도, 민족을 향한 예언자임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민족을 향한 예언자의 준비

 

하나님께서 민족을 향한 예언자로 창조하신 사람이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이세벨과 같은 존재를 상대할 준비가 되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악마의 삼각지대의 안개를 뚫고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평생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반드시 말씀의 학생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때에 하나님께서 풀어놓으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 속에 계시된 성품과 본성에 결코 어긋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된 부르심에 대한 그들의 헌신은 모든 일시적인 것들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맞닥뜨릴 전투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시키십니다.

 

엘리야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는 즉시 갈멜 산의 전투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18장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그는 3년 반 동안 거의 고립된 상태로 지냈습니다. 그는 나라 안에 만연한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아합에게 와서 그를 대면하고선, 자신(엘리야)이 비를 위해 기도할 때까지 비가 없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열왕기상 17:1). 그리고 그가 나타난 만큼이나 빠르게,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분노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숨기셨습니다.

 

이 점을 잠시 생각해 보세요. 그는 이곳저곳을 순회하면서 왜 그런 선포를 했는지, 아합의 반응이 어땠는지에 대해 인터뷰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한 뒤, 마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엘리야의 부르심은 회개를 위한 부르심이었지, 개인적 명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적적으로 까마귀들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았습니다. 그가 머물던 시냇물이 마르자 주님의 명령으로 사르밧의 과부에게 보내졌고 거기서 머물며 기름과 곡식가루로 음식을 공급받았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공급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갈멜산 전투 후 비를 확인하러 갔던 사환은 이 과부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예언자에게 광야의 계절은 흔하며 그들은 기꺼이 받아들임

 

그 3년 반은 엘리야에게 광야의 계절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그가 하도록 창조하신 일을 준비하는 깊은 성결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아합은 마치 그것이 가뭄을 끝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엘리야의 목숨을 노리며 짐승처럼 그를 사냥했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의 보호와 보존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의 광야의 시간은 분명 기도와, 어린 시절부터 먹어 온 말씀을 묵상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숨겨진 이 자리는, 그가 악마의 삼각지대—아합, 이세벨, 그리고 그들의 악한 선지자 무리—를 맞닥뜨리고도 소멸되지 않기 위해, 그에게 체화되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져야 했습니다. 모든 말, 모든 걸음은 하나님이 명하셔야 했으며, 혼돈 가운데서 그분의 음성을 인식하는 것이 그의 생존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언적 목적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선지자들을 사용해 문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결코 선지자들의 인기를 높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엘리야의 영으로 왔던 침례 요한은 사람들을 회개로 부르며 주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나라를 영적으로 준비시켜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세의 예언자도 동일할 것입니다.

 

예언자의 목적은 주님의 말씀을 풀어놓고, 가르치며, 판단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 지혜와 지식과 이해와 분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자신의 전 존재를 그 렌즈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단순한 성경적 세계관을 넘어서, 주님을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이 극심한 혼돈 속으로 들어가며 악마의 삼각지대를 통과할 때에도, 예언자는 안개를 꿰뚫어보고 주님께서 정하신 좌표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그들은 폭풍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반대편에 있는 목적지를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통해 예언자의 부르심과 목적을 분명하게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다음 글에서는 주님의 음성을 인식하는 방법, 예언에 대한 분별, 그리고 참된 주님의 말씀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어떻게 세우는지에 대해 나눌 것입니다.

 

축복과 사랑을 전하며,

 

Ricci (뤼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