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위한 터(the Ground) 준비 뤼키 좐슨-윌슨
부흥을 위한 터(the Ground) 준비
뤼키 좐슨-윌슨
2026년 6월 5일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중보한 강력한 사례들을 읽게 됩니다.
출애굽기부터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기록된 것처럼 이스라엘이 한 국가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었든, 다니엘서에서 보듯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국가였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틈에 서서 그 민족의 운명이 꼭 성취되도록 할 사람들을 일으키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위기의 시기에 국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 내기 위한 것이든, 심판의 손길을 멈추게 하기 위한 것이든, 혹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약속을 풀어놓기 위한 것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국가를 위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대각성을 위한 토양을 준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을 봅니다.
⚫선지자들—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며, 우리가 길을 벗어났을 때 바로잡고,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알려 줍니다.
⚫중보자들—그 계시를 붙들고 기도하며, 동일시 회개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성취되도록 길을 예비합니다.
⚫정치 지도자들—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실행하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풀어놓기 위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세워진, 하나님이 정하신 동역 관계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필요한 산들을 움직이실 것입니다.(마태복음 12:20)
다니엘 9장
다니엘 9:1-2
1 다리오 왕 원년에, 곧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로서 갈대아 나라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자의 2 통치 첫해에, 나 다니엘은 책들을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것을 깨달았다.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끝나리라는 말씀이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그를 심어 두신 나라 안에서 선지자적 음성이었을 뿐 아니라 예언적 중보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략 열네 살 또는 열다섯 살 무렵 포로로 끌려갔고 바벨론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심어 준 믿음의 기초는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보존하였으며, 그는 끝까지 신실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타협 없는 기도의 삶은 다니엘서 전체를 관통하는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그의 백성이 바벨론의 통치 아래 있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그의 예언적 귀를 개발하시고 조율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이 무너진 후에도 그는 메대-바사 제국에서 계속해서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로 섬겼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왕국들은 일어나고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포로를 잡아간 자들의 궁정 안에 다니엘을 두셨을까요?
하나님의 사람이 포로를 잡아간 자들에게 의로움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유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스더도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이때를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에스더 4:14)
다니엘은 히브리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간직했고, 시대의 정치적 징조들을 분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하늘 뜻이 이 땅에서 성취되는 것을 보기위해 효과적으로 중보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 9:3-4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기도와 간구로 주 하나님께 구하려고 얼굴을 향하였고, 4 여호와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복하였다.
“향하였다(set)”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탄(Nathan)입니다. 이 단어는 동사인데, 형성하다, 주다, 적용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매우 폭넓은 용례로 사용됩니다.
“기도(prayer)”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테필라(Tphillah)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의식적이고 믿음에 근거한 반응을 의미합니다.
테필라는 다음을 포함합니다. 찬양, 죄의 고백, 감사, 간구, 중보입니다. 테필라의 성격에 따라 자비를 구하는 탄원, 구원을 위한 간구, 회개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심판을 막거나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때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먼저는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테필라를 행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이 충만하게 성취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자신이 “나탄”했다고 한 것은, 자신을 주님께 드려 테필라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회개와 중보를 통해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금식과 베옷과 재 가운데 자신의 모든 개인적 필요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포로들이 풀려나는 일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회개되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9장 4절b~11절
..오 주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과 인애를 지키시는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5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습니다. 반역하였으며, 주의 계명과 규례를 떠났습니다. 6 또한 우리는 주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조상들과 이 땅의 모든 백성에게 말씀하였습니다.
7 오 주여, 의는 주께 속하였고, 오늘날과 같은 얼굴의 수치는 우리에게 속하였습니다. 곧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가까운 곳과 먼 곳에 흩어져 있는 온 이스라엘에게 속하였습니다.
7절과 8절에 나오는 “수치(confusion)”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보셋(Bosheth)입니다. 그 의미는 수치, 불명예, 굴욕입니다.
이 단어는 우상숭배가 낳는 필연적인 결과를 나타냅니다. 다니엘은 깊은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민족의 죄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이 찢어질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9:8-11
8 오 주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과 우리 조상들에게 얼굴의 수치가 속하였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가 속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를 거역하였습니다. 10 또한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리 앞에 두신 율법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11 참으로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였고 떠나가서 주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와 맹세가 우리 위에 쏟아졌으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자신들이 포로 생활 가운데 있는 이유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죄를 범했습니다.(신명기 4:25-30, 신명기 28장)
또한 하나님께서 자비 가운데 선지자들을 통해 주셨던 수많은 경고의 예언적 말씀들에 대해서도 죄를 범했습니다.(예레미야 25:8-14, 29:10-14, 에스겔 12:10-11, 이사야 39:6-7, 미가 4:10)
하나님은 그들의 반역 때문에 포로로 잡혀가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거듭거듭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고를 무시했고 죄 가운데 계속 머물렀습니다. 다니엘의 부르짖음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은 구속으로 가는 길을 여는 필수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갔을 당시 매우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는 겨우 바르 미츠바(유대인 성인식)를 마친 정도의 소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수 세기에 걸쳐 쌓아 온 죄들은 다니엘 개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주님의 시각으로 봐야 하는 ‘중보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는 장차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들을 굳게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죄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죄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심판을 허락하십니다. 마음이 완고해질 때 우리는 죄에 대해 무감각해집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 25장 8-14절에 기록된 예언의 세부 사항들, 특히 포로 기간의 연수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사야의 예언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예언은 바사의 통치자 고레스가 하나님의 손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이사야 45장)
다니엘은 이러한 예언들을 붙들고 큰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갔습니다.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을 이해하고, 그 예언이 역사 속 현재 우리의 위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보자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동일시 회개를 통해 민족의 죄를 놓고 울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그 모든 죄를 직접 저지른 사람인 것처럼요.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자기 백성이 회복되고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테필라, 즉 이런 집중적인 중보 기도를 통해 다니엘은 그 두 가지 모두를 위한 토양을 준비했습니다.
다니엘 9장16-19절
16 오 주여, 주의 모든 의로우심을 따라 간구하오니, 주의 분노와 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곧 주의 거룩한 산에서 돌이켜 주옵소서.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우리 주변 모든 사람에게 치욕거리가 되었습니다. 17 그러하오니 이제 우리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 자신을 위하여 황폐해진 주의 성소 위에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눈을 열어 우리의 황폐함과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주 앞에 간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의 크신 긍휼을 의지하여 드립니다.
19 오 주여, 들으소서. 오 주여, 용서하소서. 오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지체하지 마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자기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부흥’을 부르짖으며 경배를 마칩니다.
이것은 민족이 구원받도록 준비시키는, 아름답고도 완전한 동일시 회개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테필라입니다.
다니엘서 9장은 국가의 죄를 회개하는 기도에 대한 그림과 지침을 제공합니다. 그 기도는 국민의 대각성을 일으킬 토양을 만듭니다. 대각성은 영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 모두에서 일어납니다. 두 영역 모두 국가에 영향을 미쳐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부흥보다 크고,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대각성(Awakening)입니다.
4절에서 다니엘은 참되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경배로 시작합니다.
5절에서 다니엘은 동일시 회개로 들어갑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죄, 악행, 반역, 하나님의 거룩한 가르침으로부터의 이탈을 회개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은 어떤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율법(The Law)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죄를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반역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주제를 좀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주제에 관해 여러 이메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데 왜 율법을 이야기합니까?”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것을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가 왜 이런 방식으로 기도하는지에 대해 알고서 연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수에 맞서 하나가 되어 싸우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입니다. 다니엘은 먼 이방 땅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들을 회개했습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율법 아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계명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지를 질문받으셨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40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달려 있다.
그렇다면 613개의 율법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요? 하나님의 계명은 248개의 적극적 계명(Positive Precepts)과 365개의 금지 명령(Prohibitions)으로 구분됩니다.
적극적 계명은 “해야 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금지 명령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유대 현자들(Sages)에 따르면, 이 숫자는 인간의 몸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248이라는 숫자가 태아가 자궁 안에서 형성될 때의 신체 부분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전통적으로 206개의 뼈, 42개의 기관(Organ)을 합하여 248개의 신체 부분으로 설명합니다. 유대 현자들은 248개의 신체 지체가 248개의 적극적 계명과 대응한다고 가르칩니다. 각 계명은 특정한 신체 부위나 힘줄(sinew)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육체의 지체를 돌보듯이, 우리의 영적 지체도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탈무드(Talmud)에서 랍비 심라이(Rabbi Simlai)는 365개의 금지 명령이 태양력 1년의 365일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유명한 유대 주석가인 랍비 슐로모 이츠하키(Rabbi Shlomo Yitzchaki), 곧 라시(Rashi)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년의 365일은 하나님의 365개 금지 명령을 지키기 위해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Chabad.org 인용)
최근 우리가 함께 살펴본 유월절 모임에서도 다루었듯이, 십계명은 인간관계를 위한 의로운 지침 역할을 합니다. 다시 한번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첫 세 계명은 하늘 아버지와의 수직적 관계(Vertical Relationship)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마태복음 22:37)
네 번째 계명은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돌보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마가복음 2:27)
안식일은 노예 생활을 했던 백성들에게 쉼을 제공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여섯 계명은 수평적 관계(Horizontal Relationship), 곧 이웃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마태복음 22:39)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율법은 결국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중보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이 땅을 준비시키기 위해 국가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 과정에서 십계명은 우리의 회개를 인도하는 기준이 됩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다음과 같은 죄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 무고한 피 흘림, 각종 불의,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들,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죄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회개할 자유가 있으며,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던 죄에 대하여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율법 안에서 정의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매우 강하게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각 교회가 싸우고 있던 구체적인 죄들을 하나하나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죄들은 모세의 율법 안에서 발견됩니다.
다시 말해, 은혜 아래 있다는 사실이 죄를 죄가 아니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의 삶을 살았던 다니엘은 성경이 죄라고 규정하는 것들을 놓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중보자인 우리도 동일하게 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함으로써 우리는 대각성을 위한 토양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6절에서 다니엘은 주님의 종들인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진 주님의 말씀에 반역한 죄를 회개합니다.
7절부터 11절에서 다니엘은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부르짖습니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든 먼 곳에 흩어져 있든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기도하면서, 이스라엘 나라에 닥친 재앙과 악한 결과들에 대해 자신 또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다니엘 9장 12-15절
12 주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말씀과 우리를 다스리던 재판관들에게 하신 말씀을 확증하사 우리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온 하늘 아래에서 예루살렘에 임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 기도하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죄악에서 돌이켜 주의 진리를 깨달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 재앙을 지켜보시다가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15 이제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날까지 이름을 떨치신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그는 먼저 회개하지 않고서는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는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를 모두 돌아보면서도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시간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표는 그의 백성이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바로 그 순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제 현대 미국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1989년, 제 어머니는 일련의 방문을 통해 미국의 죄 때문에 다가오고 있는 엄청난 심판들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계시의 부담을 10년 동안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심판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심판을 견뎌낼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교회에서 교회로 다니며 그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어머니가 전국을 다니며 사역하는 동안 이 짐은 매우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1999년에 주님은 어머니에게 해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게더링 사역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에스겔 33장에 나오는 성벽 위의 파수꾼처럼 부르셨습니다. 또한 요엘서 2장 17절이 가르치는 것처럼 기도를 통해 심판을 막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26년 동안 주님의 세밀한 인도하심 아래 미국의 죄를 회개해 왔습니다. 그 과정은 환상과 꿈을 통해 시작되었고,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연구하며 실제 책들을 읽음으로써 확인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으며, AI가 20초 만에 책 한 권을 요약해 주는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무엇이 우리 국가를 심판에 노출시키는지, 어떤 죄들이 국가를 짓누르고 있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변화의 바람에 대비하라(Prepare for the Winds of Change)』라는 책에서 기록했던 엄청난 규모의 심판을 초래하는 문이 무엇인지를 조사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죄들을 회개했습니다. 원주민(First Nations People)에 대한 죄, 노예제도의 죄, 낙태의 죄, 아시아계 공동체에 대한 죄, 다른 국가들을 불안정하게 만든 죄, 인신매매의 죄, 카발(Cabal)의 역사와 관련된 죄, 프리메이슨 의식(Masonic Rituals)과 관련된 죄, 신의 정원(Garden of the gods)과 관련된 죄, 그 밖의 수많은 죄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새로운 문제들을 드러내실 때마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 그 죄들까지 철저히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최근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심판들을 피하게 되었습니까?” 203페이지의 지도에 묘사된 것처럼, 미국의 동부 해안과 서부 해안, 그리고 텍사스까지도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수준의 재앙에 관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그 정도의 심판은 유보되도록 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그 해안 지역들 위에는 엄청난 정치적 어둠이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로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보여 주신 그 파괴적인 광경은 대부흥(Revival)이 있은 훨씬 이후에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이 부흥이 단순히 한주 두주 동안 일어났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부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부흥은 대각성(Awakening)으로부터 탄생한 부흥이며, 한 나라를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역사입니다.
다음 주에는 대럴(Darrell)이 하나님께서 왜 이 시대를 위해 도널드 트럼프를 일으키셨는지에 대해 우리와 나눌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제가 그 대각성(Awakening)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굳건히 서 계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이 땅 가운데 풀려나도록 그 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바로 그것이 대각성(Awakening) 입니다!
축복과 사랑을 담아,
뤼키(Ricci)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