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홍해의 순간 미국 내부에서 일하심

 

2025년 5월 2일

 

뤼키 좐슨-윌슨

 

하나님의 수술대 위에 있는 미국

 

2020년 여름 주님께서 제게 우리 나라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미국은 한 여성의 형상으로 나타났는데, 큰 참변을 겪은 후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앞에 놓인 수술대 위에 있었습니다. 그 몸의 모든 부분이 이 사고로 인해 손상된 상태였고, 주님은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매우 분주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손은 너무도 빠르게 움직여 제 육안으로는 흐릿하게만 보였지만, 성령을 통해 그분이 집중하고 계신 부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머리 (하나님을 떠난 생각들,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따랐고, 거짓 교리와 사회 정의 이념을 받아들였습니다.)
  • 심장 (마음이 하나님께서 멀어졌고, 이웃에 대한 원망과 용서하지 못함을 품었습니다.)
  • 위 (속임수와 타협의 독물을 받아들여 영혼을 오염시켰습니다.)
  • 자궁 (낙태로 인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 무릎 (자아, 기술, 탐욕이라는 우상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 발 (이 모든 결과로 하나님을 떠나 미혹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우리 나라를 수술하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손수 상처를 만지실 때마다, 그 부위는 치유되고 그분의 손에 의해 잘 봉합됐습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내내 금빛이 그 여성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분의 자비 가운데 주님은 참으로 이 나라의 영혼을 치유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때 ‘이 일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엄청난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제 생각에 응답하셨습니다. “햇살이 흙에서 이슬을 끌어올리듯이, 나는 이 나라의 영혼 속에서 트라우마를 끌어올리고 있다. 잘 지켜보아라.”

 

저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있는 자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다루고 계시고 죄를 다스리시며 그 죄로 인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계십니다. 중보자로서 우리는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이 큰 흔들림 속에서 나라의 안정을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타협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자신들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왜 교회는 이 타협이 나라에 들어올 때 이에 맞서지 않았는가? 성, 마약, 록앤롤 (세상 음악) 문화가 우리 청년들을 타락으로 몰아갔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태아에 대한 명백한 범죄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의도된 것이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저는 이전에도 일부 다룬 적이 있지만, 지금 이 시점 주님께서 우리 나라를 수술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상황의 뿌리를 잘 이해해야만 더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으며, 또한 어떻게 우리가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인식함으로써 다시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타협”이라는 단어는 복잡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함께 놀 때 타협하길 (어느 정도 양보하길) 원합니다. 한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하고 다른 아이는 농구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타협을 통해 놀이 시간을 나누어 첫 번째 부분은 자전거를 타고, 두 번째 부분은 농구를 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분배합니다. 그것은 좋은 타협입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사람들을 곧장 지옥으로 데려갈 수 있는 타협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타협할 때, 즉 우리가 진리에서 타협할 때, 혹은 우리가 우리의 기본 가치들을 타협할 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규례들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들이기에, 우리는 진리로부터 속임수로의 느린 하강을 시작하게 되고 그것은 영원히 치명적인 실수가 되는 것입니다

 

완벽한 예시는 사회 정의 운동이나 자유주의/해방 신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재앙들

 

몇 주 동안 저는 ‘미국의 홍해의 순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2020년에 제게 주신 말씀에서 비롯된 것으로, 교회 안에 있는 부패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주에 어머니와 저는 카톨릭 교회와 그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논의했습니다. 수요일 통화 직전에, 어머니께서 전화로 “카톨릭 교회 안에 있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는 ‘자유주의/해방 신학이고, 이것이 오늘날 전체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날 밤 그것을 놓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그 용어 (자유주의/해방 신학)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약간 당황하며 명확한 설명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저는 그 문제들이 제가 “미국의 홍해의 순간이 다가온다”라는 메시지에서 다뤘던 사회 정의 이슈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들은 지금 국가 안에 있으며, 교회 안에서도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이것들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로 간주된다고 말씀드렸고, 이는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이념)에서 직접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이 사회 정의 이슈들 즉 우리의 재앙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지만, 그 전에 배경 설명을 하겠습니다:

 

사람 마르크스는 교회가 굳건히 서 있는 한, 어떤 나라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안으로 침투해야 했지만, 19세기의 설교자 찰스 스펄전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성을 가르치는 경건한 사람들이 있는 한, 영국 같은 곳에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한 국가를 정복하려면 문화와 교회를 모두 영향력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은 “공산당 선언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교회를 약화시키고 타락한 가치들로 문화를 조종하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카톨릭 교회가 자유주의/해방 신학을 도입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사회 정의 플랫폼을 도입하면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난을 종종 받았습니다. 제가 이것을 조사해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유주의/해방 신학이 마르크스주의 이념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기사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마르크스가 자유주의/해방 신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해방 신학은 수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어머니 니타는 제게 이 문제를 명확히 하고, 우리가 더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현재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슈들을 다시 살펴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미국의 홍해의 순간과 오늘날 교회 안에 침투한 특정 재앙들 또는 타락한 가치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BLM)
  •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 LGBTQ+
  • 비판적 인종 이론(CRT)
  • 기후 위기(Climate Crisis)
  • 피 흘림: 낙태와 인신매매
  • 인공지능(AI)

 

이 재앙들은 교회와 국가 모두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들을 국가에서 정말로 제거하고자 한다면, 먼저 교회에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다음의 세 가지 재앙은 국가 안에 특히 존재하며,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이들은 교회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교회 내부에서는 반드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부패한 정부 기관들: FBI, CIA, 국무부 등
  • 미디어
  • 학계

 

우리는 이러한 이슈들을 아마도 사회 정의 또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이념으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 “자유주의/해방 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 신학은 수세기 전, 예수회 신부들에 의해 카톨릭 교회를 통해 유입되었습니다. 예수회는 그들의 주요 초점으로 사회 정의 이슈들, 즉 자유주의/해방 신학을 삼고 있습니다.

 

예수회는 1540년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때 서기 300년경의 예수회원으로 여겨진 교황들이 있었습니다. 예수회는 교육, 사회 정의, 선교에 대한 헌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학교, 대학, 봉사 프로그램에서 활동합니다. 그들은 교황에 대한 절대 복종의 서약을 합니다.

 

국가가 형성되면, 그 국가에 영향을 끼치게 위해, 예수회는 그 국가의 교회적(Ecclesiastical), 정치적(Political)인 모든 영역에 풀어 놓아지게 됩니다.

 

이 사명에 동참할 인재들은 대학들에서 모집 되며, 그 국가가 더 높은 권위, 즉 교황에게 굴복하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제가 지난주에 나눈 꿈 속의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입니다.

 

이러한 영향력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오바마의 내각 모든 구성원 16명은 예수회 출신이었습니다. 바이든은 예수회 출신16명 중 12명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퍼뜨린 자유주의/해방 신학 또는 사회 정의 이슈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회의 최종 목표는 무력 충돌 없이(피 흘림 없이), 한 나라를 굴복시켜 국가를 장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젊은 세대를 사회 정의의 대변인으로 사용하고, 동시에 기업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국가 안에서 입법 변화를 강요합니다.

 

교회적으로 말하자면: 예수회는 오래전에 교회 안으로 이미 들어와, 희석된 사회복음(Social Gospel)을 심었습니다. 저들의 목적은 교회가 국가 안으로 침투하는 이 예수회의 영향력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듬으로 이에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1600~1700년대에는 종종 “검은 로브의  군단(Black Robe Regiment)”이라 불리는 성직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미국의 사명과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당시 예수회가 펼치러 하는 이슈들에 대해 성도들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힘껏 싸웠습니다.

 

하지만 남서부 지역에서는 예수회라는 집단이 등장하여, 서부 해안선을 따라 선교지를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쯤에는 미국 교회가 국가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은 서서히 확장되어 교회를 교황에게 굴복시키기 위해 “목회자(pastors)”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다양한 교단 안으로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설립된 후 그들은 대중에게 이 자유주의/해방 신학을 대대적으로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유주의/해방 신학이란 무엇인가?

 

자유주의/해방 신학은 억압받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해방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행동주의를 통해 이루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신학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억압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의 시각에서 해석하며, 사회 정의를 옹호하고 억압적인 체제에 도전합니다.

 

이는 성경의 이야기들과 가르침을 재해석하여, 해방과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과의 관련성을 강조합니다.

 

해방 신학은 또한 “사회적 죄(social sin)”라는 개념을 강조하는데, 이는 억압의 구조들이 단순한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집단적인 죄이며, 체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포함합니다. 즉 피부색이 당신 죄의 정당성을 설명해 주거나, 억압자에 대한 범죄가 정당화해야 된다는 생각이 세상과 많은 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지배적인 이야기 원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대중의 책임 의식을 벗겨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 등 많은 교단들이 무너지고 분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교리적인” 문제로 분열되는 것같이 보였지만, 사실 대부분은 자유주의/해방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다른 측은 동성애나 여성의 권리 같은 사회 문제의 죄를 정당화하거나 용인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기를 거부했던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이 속임수에 현혹되어 혼란에 빠지고 무너지는 동안, 적들은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할 인물들을 심어 우리 국가를 둘러싼 죽음의 관에 마지막 못을 박도록 했습니다. 그 인물들이 바로 오바마와 바이든입니다. 힐러리가 마지막 못이 될 뻔했지만, 하나님은 트럼프 대통령을 사용하셔서 그들의 계획을 막아 내셨습니다!

 

현대의 자유주의/해방 신학의 예시: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오늘날 얼마나 다양한 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현대적 예시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루터교의 기초는 카톨릭 교회의 뜻과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1517년 자신이 카톨릭 교회를 비판한 95개 조항을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못 박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빛 가운데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행한 것입니다.

 

이 논제에서 그는 카톨릭 교회 내의 오류들, 기만에 맞서 진리를 밝히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교회 지도부와의 논의를 열고자 하는 목적을 상세히 밝혔습니다.

 

그의 주된 세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세 개의 조항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입니다:

 

  1. 우리 주님이시며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태복음 4:17)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믿는 자들의 온 삶이 회개의 삶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1. 이 말씀은 성직자들에 의해 시행되는 고해 성사(참회와 속죄의 성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1.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내면적인 회개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그 회개가 육체의 다양한 절제 행위를 낳지 않는 한 그러한 내면적 회개는 무가치합니다.

 

제 4-14조항은 교황의 권한과 연옥(purgatory)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도전, 성직자들의 부패, 그리고 죄의 용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논의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성직자, 곧 교황에게 있다고 가르칩니다.)

 

  • 연옥(Purgatory):

 

이 믿음은 연옥이라는 카톨릭 개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옥은 죽은 후,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정화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카톨릭 신자들은 살아 있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드리는 기도가 이미 죽어 연옥에 있는 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은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군사들이 이방의 부적을 몸에 지닌 채 죽은 병사들을 위해 희생 제물을 드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마카베오 하 12장 43–46절에 근거합니다. 이는 이미 죽은 자들의 죄가 기도를 통해 속죄될 수 있다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에 모순됩니다.

 

루터의 95개 조항 중 15 – 82조항에서는 면죄부와 독일에서 면죄부를 팔던 설교자들의 전술에 대해 루터가 제기한 핵심적인 반론입니다.

 

루터는 이 일로 인해 심한 박해를 받았고, 카톨릭 교회가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기 때문에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 이것은 오늘날 개신교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 개신교 교단들 중에는 루터 교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 복음주의 루터 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 ELCA)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그들의 신앙 체계의 기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 교회(ELCA)는 사회 정의를 그들의 신앙과 사역의 핵심 요소로 강조하며, 이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직접적인 결과로 봅니다. 이 헌신은 정치적 옹호, 직접적 서비스 제공, 체계적 불평등을 다루는 교육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ELCA는 성평등, 인종 정의, 환경 정의, 인권 문제 등에서 활동합니다.

 

ELCA의 사회 정의 헌신의 핵심 요소들:

 

  • 성평등 및 여성 권한 강화: ELCA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을 종식시키고, 그 근본 원인인 성차별과 가부장제를 다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인종적 정의:

 

  • ELCA는 인종, 민족, 문화적 장벽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 싸우며, 다인종이며 다문화적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환경 정의:

  • ELCA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의 성명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청지기적 책임과 환경 정의 추구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 인권: ELCA는 인권을 적극 지지하며, 공공 영역에서 자유, 정의, 평화, 질서를 위해 일합니다.

 

  • 사회 사역 단체(Social Ministry Organizations): ELCA는 보건, 인도주의적 돌봄, 재난 대응, 옹호 활동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 사역 단체 네트워크를 지원합니다.

 

구체적 프로그램 및 이니셔티브(발의):

 

  • 정치적 옹호 활동: ELCA는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정의를 증진하기 위해 정치적 활동에 참여합니다.

 

  • 교육 이니셔티브: ELCA는 사회 정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지도자와 교회들을 훈련하고 교육 자료를 제공합니다.

 

  • 직접적 서비스: ELCA는 필요한 사람들과 공동체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사회 사역 단체들을 지원합니다.

 

  • 사회 성명(Social Statements): ELCA는 자신들의 가르침과 사회 문제에 대한 정책 입장을 설명하는 사회 성명을 개발하고 승인합니다.

 

신학적 기반:

 

ELCA의 사회 정의에 대한 헌신은 루터교 신학의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신학은 하나님의 은혜, 믿음, 사랑을 강조합니다. 루터교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받았기 때문에, 이웃을 돌보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를 위해 일할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유주의/해방 신학의 정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1999년 주님께서 저희 어머니 니타에게 “독수리들의 연합 모임(Gathering of the Eagles)” 사역을 시작하라고 부르셨고, 지난 25년간의 꾸준한 회개와 중보 사역을 통해, 카발의 세력이 폭로되었고, 이 마르크스주의/해방 신학의 부패, 그리고 우리 나라를 삼키려 했던 재앙들은 우리 해안에서 몰아내 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땅을 치유하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는 “독수리들의 연합 모임” 사역과 중보의 열매들에 대해 이미 자세히 나눈 바 있습니다. 오늘 저는 단지 하나님께서 그분께 순종하는 종들을 통해 이루신 일들을 다시 상기시켜드리고자 말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엄청난 진전을 그동안 이루었고, 저는 이 재앙들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오히려 그것들이 뿌리 뽑히고 있다는 표시라고 믿습니다. 그것들은 이전에는 은밀히 숨겨져 사회의 구조 속에 교묘히 짜여 있었지만, 지금은 주님께서 뽑아 내시려는 느슨한 실타래들일 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고 순종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대체하실 것입니다!

 

잭 해머 (땅을 뚷는 기계)

 

지난 5월 1일 목요일 국가 기도의 날, 기도 중에 나는 주님의 손에 들린 잭 해머를 비젼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잭 해머와는 달랐지만, 분명히 동일한 효과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잭 해머는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고, 그는 주님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자신의 잭 해머를 갖고, DC의 기반암을 부수고 계셨습니다. 이는 그 안에 있는 늪을 뚫고 들어가 효과적으로 배수하기 위함입니다. 나는 DC의 일부가 원래 습지 같은 땅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트럼프 대통령을 사용해 드러내고 배수하려 하시는 이 특별한 ‘늪’은 훨씬 깊고 정치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영향력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곳은 관료들과 로비스트 같은 늪의 생물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은 미국 납세자들의 돈을 이용해 수백만 달러를 자신의 주머니를 위해 챙기고 채우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시대를 위해 창조된 자이며, 만일 우리가 미국이 카발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진정으로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서야 하며, 그의 삶 속에 지혜와 지식과 분별력과 통찰이 다스리도록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다음 것들을 대적해야 합니다:

 

  • 자유주의/해방 신학 (Liberation Theology)
  • 공산당 선언 (Communist Manifesto)
  • 미국의 홍해의 순간(America’s Red Sea Moment)의 우리를 괴롭히는 재앙들
  • 피 흘림: 낙태, 인신매매, 전쟁

 

낙심하지 말고 주류 언론을 듣지 말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이번 주에 본 또 다른 비젼을 나누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나는 걷고 있었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거대한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키가 크고, 굵고, 위엄 있는 나무였습니다. 땅에서 약 2 피트(60cm) 정도 위에, 커다란 덩어리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그 나무를 만질 수는 있었어도 그 덩어리를 팔로 감쌀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주님께 이게 무엇인지 여쭈었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나라다. 그리고 네가 보고 있는 저 덩어리는 이 나라가 지금 막 지나오고 있는 고통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 흉터가 될 것이다. 껍질이 완전히 잘 아물고 완전히 봉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이는 앞으로의 날들을 위한 귀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덩어리가 너무나 걱정되었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안심시키셨습니다. “괜찮다. 이것은 한 나라의 마음이 나를 떠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 될 것이다.”

 

그러자 나무가 갑자기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빨리 자라서 나는 그 덩어리를  거의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내 옆에 서 계심을 느꼈고, 우리는 함께 그 덩어리를 올려다보며 서 있었습니다. 몇 분 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한 나라의 마음이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올 때 내가 축복과 확장을 통해 행할 일들에 대한 표식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전에 이런 덩어리(burl)에 대해 본 것이 기억나서 찾아보았습니다. 그것들은 ‘트리 버(tree burl)’이라고 불리며, 나무가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곤충이나 바이러스나 혹은 곰팡이에 의해 손상되었을 때 생깁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나무가 상처를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 빠르게 성장하게 만들어서, 어떤 나무의 버들은 엄청나게 커지며 그 안의 독특한 소용돌이 모양과 비정상적인 무늬 때문에 고가의 목공예에 쓰이기도 하여 그 나무 벌을 일부러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얻으려고 일부러 잘라내면 나무에 열린 상처를 남기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 덩어리를 제거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그것을 봉인하길 원하시고, 우리 역사 속 이 부분을 하나의 기념비로 남기길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녀들에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유산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듯이 말입니다. 그들은 요셉과 관련된 사건이 어떻게 그들을 애굽으로 이끌게 되었는지 배웠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계적인 기근 속에서 먹이시기 위해 그 일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그들에게 언약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애굽에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순종이 열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일으키셨고, 모세는 포로된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굽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홍해의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나아가는 여정 가운데, 그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재앙들과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이 여러 세대에 걸친 대화들 가운데 어떤 세부사항도 빠지지 않은 이유는 후손들이 하나님께 충실하고, 노예제도나 낙태와 같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끔찍한 일들을 거절하며, 타협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미국인들에게도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계절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며, 이 땅의 시민권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 둘 다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의 재앙들을 뽑아 내시는 이 때에, 그분을 신뢰하며 양쪽 시민권을 잘 지키고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축복과 사랑을 전하며,

 

뤼키 좐슨-윌슨